샤넬의 두 이름
가브리엘 샤넬은 1883년에 프랑스 소뮈르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장돌뱅이였던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난 것에 관심조차 없었고 어머니는 병에 걸려 그녀가 어릴 때 사망했고요.
가브리엘 샤넬은 오바진 수녀원으로 보내져 7년여간 머무르며 바느질을 배웠고,
그녀는 이곳에서 금욕주의와 블랙 앤 화이트 컬러의 수녀복 의상,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색유리를 이어 붙이거나 유리에 색을 칠한 장식용 판유리)로부터 샤넬 디자인의 영감을 얻었습니다.
성인이 된 가브리엘 샤넬은 수도원을 나와 봉제회사를 다니며 저녁에는 카페에서 가수로 일했습니다.
당시 그녀가 부른 노래 때문에 ‘코코’ 라는 애칭을 얻게 되었고, 가브리엘 샤넬은 후원자인 아서 에드워드 카펠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1910년에 파리의 패션 거리 캉봉가에 샤넬 모드라는 모자 가게를 열었습니다.
가게 오픈 초기에 샤넬이 선보인 수수하고 간편한 모자는 상류층 부르주아 여성들에게 외면 당했는데,
당시 유명한 연극배우였던 가브리엘 도르지아가 자신의 연극 ‘멋진 친구들’에서 샤넬의 모자를 착용하면서 상류층 여성들로부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1913년 가브리엘 샤넬은 모자 디자이너로서 성공한 것을 기반으로 해양 휴양도시였던 도빌 지역에 최초의 부티크를 오픈하게 됩니다.
샤넬의 역사와 순탄치 않은 성공 과정
부티크를 오픈한 후, 가브리엘 샤넬은 휴양지에 어울릴 만한 단순하고 편리한 옷을 디자인했는데, 그중 첫 번째로 출시된 의상은 여성복 ‘카디건’이었습니다.
가브리엘 샤넬은 항구도시인 도빌의 날씨가 차고 습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폴로 경기장에서 보온을 위해 남성들이 착용했던 니트 셔츠에서 힌트를 얻어 카디건을 개발했습니다.
카디건은 기존에 거추장스럽던 코르셋과 페티코트를 착용할 필요 없이 느슨하고 헐렁하게 디자인된 점이 특징입니다.
샤넬이 인지도를 얻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9년) 때였습니다.
전쟁 발발과 함께 여성들의 노동력이 요구되어 여성들은 화려한 장식이 어우러진 기존의 의복 스타일보다는 샤넬의 실용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샤넬은 남성 속옷에 사용되었던 얇고 가벼운 저지 천을 투피스에 활용해 여성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 투피스는 1916년 3월에 파리인의 엘레강스 잡지와 같은 해 미국의 유명 잡지인 하퍼스 바자에 소개되었고, 1917년 2월 미국의 보그지에도 소개되어 극찬을 받았습니다.
대외적인 명성을 얻게 된 샤넬은 1918년에 파리 패션의 중심지였던 캉봉가 31번지로 진출했습니다.
이후 샤넬은 엉덩이 부분 옆 선에 주름을 넣어 만든 샤넬 라인 원피스를 비롯해 큰 호주머니를 단 짧은 소매 재킷, 길고 따뜻한 머플러 등을 추가로 출시하여 1920년대 자유로운 복장을 원하던 여성들의 욕구를 충족시켰습니다.
1921년, 샤넬은 첫 번째 향수이자 최초의 배합 향수인 ‘N°5’를 출시했다. 샤넬은 ‘N°5’의 성공에 이어 1922년에는 ‘N°22’, 1925년에는 가드니아, 1926년에는 브와 데 질, 1927년에는 뀌르 드 뤼시라는 향수를 잇달아 출시했습니다.
샤넬은 1924년에 향수와 화장품 라인을 제조 · 판매하는 별도의 샤넬 향수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1924년 샤넬은 최초로 코스튬 주얼리 (모조 보석, 모조 비즈 등을 소재로 제작한 주얼리)를 출시했습니다.
모조 소재 액세서리에 대한 비난이 있던 때였지만 가브리엘 샤넬은 ‘보석은 부나 집안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패션을 위한 액세서리이어야 한다’며 자신의 신념을 강조했고, 자신도 모조 진주를 보란 듯이 하고 다녔습니다.
이후 색색의 보석이나 비잔틴 십자가로 장식한 모조 진주 목걸이 등은 샤넬 장신구의 고전이 되었고, 대중들로부터 폭발적인 지지를 얻게 됩니다. 1929년 샤넬은 캉봉가에 액세서리 부티크를 정식으로 열었고, 1934년에는 패션 액세서리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1926년 샤넬은 여성용 야회복인 ‘리틀 블랙 드레스’를 출시했는데, 이 제품은 같은 해 5월 보그지에 ‘샤넬의 포드’라고 소개했습니다.
당시 포드 모델 T 가 대중화의 대표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는데 리틀 블랙 드레스도 파리의 유니폼이라 불릴 정도로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서 샤넬의 포드라는 별칭이 생겼습니다.
리틀 블랙 드레스는 상복에만 쓰이던 검은 색상을 처음으로 여성의 일상복에 적용한 것으로, 이후 40% 이상의 샤넬 제품에 검은색과 흰색이 사용됐습니다.
샤넬이 파인 주얼리(고가의 보석으로 만든 고급 주얼리)에 손을 대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1932년 샤넬은 값 비싼 다이아몬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다이아몬드 주얼리 전시회인 비주 드 디아망을 개최했습니다.
하지만 샤넬은 값비싼 주얼리도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해석하여, 다이아몬드 주얼리를 전시용 케이스와 검정 벨벳이 아닌 마네킹에 전시하여 보석 세공사들로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런 샤넬에게도 아픈 순간이 있었습니다.
1935년 샤넬은 4천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캉봉가에 5개의 빌딩을 소유할 만큼 성장했지만,
1939년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의 발발과 함께 액세서리와 향수 점포만 남긴 채 부티크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1954년, 15년간 파리를 떠났던 샤넬이 71세의 나이로 돌아와 부티크를 다시 열고 제품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여성들은 전쟁 동안 입었던 실용적인 의상에서 벗어나 우아하고 화려한 의상을 찾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에 크리스찬 디올은 코르셋과 부풀린 스커트로 허리 라인을 강조한 뉴룩을 출시했고, 이는 패션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샤넬은 이러한 트렌드가 특정 상류 계층만을 위한 것이라 주장했고, 1954년 2월 저지, 진주 등을 결합한 편안한 의상들이 주를 이룬 샤넬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파리와 유럽의 비평지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발표회’라며 혹평한 반면, 미국의 패션계에서는 ‘현대 여성의 욕구에 부합하는 옷’ 이라며 크게 호평했습니다. 이 점은 관점의 차이인 것 같네요.
1954년 샤넬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져온 트위드 소재(순모로 된 스코틀랜드산 직물)를 활용해 샤넬 슈트를 출시했습니다.
이 제품은 계절에 관계없이 여러 해 동안 입을 수 있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스테디셀러(꾸준히 잘 팔리는 제품)로 자리 잡았습니다.
1955년 2월에 샤넬은 금색 체인이 달린 퀼팅 숄더백을 출시했는데, 출시 날짜를 따서 2.55백이라고 불렀습니다.
1957년 샤넬은 미국 댈러스에서 20세기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에게 수여하는 ‘패션 오스카상’을 수상했습니다.
1971년 1월 10일, 샤넬은 87세의 나이로 37년 간 머물렀던 파리 리츠호텔에서 별세했습니다.
리츠호텔에서는 샤넬을 기리기 위하여 그녀가 머물던 방을 ‘코코 샤넬 스위트 룸’이라고 이름을 짓게 됩니다.
샤넬이 추구한 가치
실용주의를 선도한 디자인
샤넬 제품들은 ‘20세기 여성들에게 자유를 선물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여성들을 위한 실용적인 의상에 그만큼 신경을 썼다는 의미이죠.
샤넬은 당시 남성용 의상에만 쓰였던 저지 소재를 활용해 유연성을 갖춘 여성복으로 만들어 여성들의 허리를 옥죄었던 코르셋을 벗도록 만들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샤넬은 운전기사의 코트에서 착안하여 방수 기능이 뛰어난 고무 레인코트를 만들었고, 그 이후에도 재킷에 포켓을 달거나 핸드백에 어깨 끈을 달아 활동성이 높은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자부심을 선사하는 귀족 마케팅
최상류 층을 겨냥한 귀족 마케팅은 샤넬의 성공 요인 중 하나입니다.
귀족 마케팅은 자신의 위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고소득층 고객들의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 목표인 마케팅이었습니다.
샤넬은 이런 고객들이 제품 구매 시 자부심이 생길 만한 가격을 책정했고, 누구나 볼 수 있는 TV나 신문과 같은 대중 매체에는 샤넬의 제품 광고를 싣지 않았습니다.
샤넬의 이러한 선택적 마케팅은 샤넬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샤넬의 새로운 기술 및 발명
까멜리아(Camellia)
가브리엘 샤넬은 장수와 풍요, 그리고 영원을 상징하는 까멜리아(동백꽃)가 악한 기운을 없애준다고 믿어, 이 꽃을 가장 좋아했다고 합니다.
샤넬은 자신이 좋아한 까멜리아를 활용해 그녀의 리틀 블랙 드레스에 악센트를 주었고, 까멜리아는 숙련된 공예 장인들의 수작업을 거쳐 만들어졌습니다.
샤넬의 공예 장인들은 꽃의 모양과 형태를 잡아주기 위해 꽃잎을 하나하나 하트 모양으로 자르고 암술 모양을 섬세하게 중앙에 세공해 ‘까멜리아’ 주얼리를 완성시켰다고 합니다.
퀼팅 패턴 숄더백(Quilting Pattern Shoulder Bag)
샤넬은 1955년에 퀄팅 패턴 숄더백을 출시했습니다. 이 백은 숄더 체인과 퀼팅 패턴이라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숄더 체인은 샤넬이 스트랩이 있는 군인 가방에서 착안한 것으로, 클러치 백(손에 드는 여성용 작은 지갑)에 끈을 달아 준 것입니다. 이로써 여성들은 가방을 착용하고도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퀼팅 패턴은 두 겹의 천 사이에 솜을 넣고 누비질을 하는 것으로 샤넬은 퀼팅으로 다이아몬드 패턴을 표현했고, 지금까지도 이 퀼팅이 적용된 핸드백은 샤넬의 대표 아이콘으로 남아 있습니다.
샤넬 재킷의 4가지 디테일
1954년, 화려한 장식이 트렌드였던 시절에 샤넬은 남성복 재킷에 사용되던 소재들을 변형시켜 실용적이면서도 완결성이 돋보이는 옷을 디자인했습니다.
이때 샤넬이 재킷에 적용한 요소는 4가지였습니다.
앞 주머니(여성용 의복에 적용된 적이 없었음), 매칭 혹은 대조적인 브레이드(Braid, 실을 꼬아서 만든 장식용 수술) 장식, 샤넬 로고가 새겨진 단추(당시 대부분의 단추에는 구멍이 있었음), 그리고 실크 안감에 꿰맨 섬세한 체인 장식이었습니다.
체인 장식의 경우, 체인 무게 때문에 재킷이 평평하게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이후 4가지 요소는 샤넬 재킷을 대표하는 특징이 되었습니다.
샤넬 라인
샤넬은 매 시즌마다 판매되었다가 시즌이 끝나면 생산하지 않는 즉 특정 기간에만 판매하는 시즌 백이 있습니다.
그중 아래 라인업들은 시즌 상관없이 항상 판매되는 스테디 라인 백입니다.
시즌 백이 항상 판매되는 스테디 라인업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있는데 보이 백, 코코핸들 백, 트렌디 CC 등도 시즌 백으로 출시되었다가 스테디 라인이 된 백들입니다.
샤넬은 핸드백들의 스타팅 가격이 비교적 높은 편인데, 조그마한 가로길이 10cm 중후 반대의 미니 백들도 보통 400만 원대를 넘깁니다. 가방의 스타팅 가격대는 에르메스보다 오히려 샤넬이 더 비싼 편입니다.
스테디 백
- 클래식 백
일명 "여성들의 과거, 현재, 미래의 영원한 로망". 샤넬 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인기 있는 가방이며, 명품 가방을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제품입니다.
1955년 코코 샤넬이 만든 가방이며 1955년 2월에 처음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2.55입니다.
최초로 어깨에 매는 가방으로 유명하며 손잡이도 그 당시에는 쓰지 않던 금속 재질로 만들었습니다.
샤넬은 어렸을 적 고아원에서 컸는데 그 고아원의 경비원이 차고 있던 열쇠 꾸러미의 사슬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안감의 버건디 색깔은 고아원의 유니폼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마드무아젤 락이라 불리는 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오늘날 샤넬 빈티지 백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락. 우리가 흔히 아는 CC 로고의 락은 80년대에서야 만들어졌습니다.
CC 로고의 락을 사용하는 것들은 클래식 플랩백이라고 불립니다. 아래 사진에 나온 백을 2.55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2.55백은 밑에 빈티지 백에 첨부해놓은 사진이 2.55 백입니다.
샤넬에서 에르메스를 타깃으로 두고 가격을 올린 것으로 유명하며,
지속적인 가격 인상으로 인해 2021년 현재 가장 흔한 미듐 사이즈는 국내 판매가 864만 원을 자랑합니다.(그렇지만 못 구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가방)
2000년 후반만 해도 미디엄 사이즈 기준 280만 원 정도였던 핸드백이 조금씩 오르더니 2010년대 중반에는 600만 원대까지 올랐다가 2020년 7월에는 864만 원까지 올랐고 이외에도 스몰 사이즈 785만 원, 라지 사이즈 942만 원, 맥시 사이즈 1,014만 원이 되며 클래식 맥시는 1000만 원을 넘겼습니다.
- 보이 백
2011년 시즌 백으로 출시되었다가 반응이 좋아서 스테디 백이 된 가방입니다.
애인 보이 카펠의 권총 주머니에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합니다. 재질은 기본적인 캐비아(소가죽)와 양가죽 외에도 파이톤, 스팅레이 (가오리), 데님, 트위드 등 다양하게 시즌별로 나옵니다. 한국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샤넬 가방인데, 그만큼 짝퉁도 정말 흔할 정도입니다. 더 젊고 현대적인 디자인이 샤넬 하면 클래식 백만 떠올리는데, '클래식 백은 2~30대가 매고 있으면 예물 가방 느낌 나는 데다 고루하고 나이 들어 보인다'라고 생각했던 젊은 층에게도 보이 백으로 어필하여 이제는 클래식만큼이나 인기가 많습니다.
가격은 2020년 11월 기준 가격 인상이 진행되며 스몰 사이즈 614만 원, 미디엄 사이즈 671만 원입니다.
스몰보다 더 작은 미니 사이즈는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단점은 600만 원이 넘는 비싼 가격인데도 안감이 가죽이 아니라는 것이죠.
사이즈는 북미에서는 Small, Old Medium, New Medium, Large로 구분하는데 한국에서는 올드 미디엄을 미디엄으로 부른다. 한국에서 뉴 미디엄을 미디엄 라지라 부릅니다. 수납력은 비슷한 사이즈의 클래식 플랩보다 떨어집니다.
- 트렌디 CC 백
2014년 시즌 백으로 출시되었다가 반응이 좋아 스테디 백이 된 가방입니다.
탑 핸들 백으로 핸들 아래 가방 상단 부분에 CHANEL이라 써진 골드 스틸 바가 박혀 있는 가방입니다.
가격은 2020년 기준 스몰 사이즈가 668만 원입니다. 이 제품 역시 정말 구하기 힘든 제품입니다.
- 코코핸들 백
2015년 시즌 백으로 출시되었다가 인기가 워낙 좋아서 스테디 백이 된 가방입니다.
그 인기가 상당한 편인데 코코핸들이 매장에 입고된다는 소식이 들리면 해당 매장 웨이팅이 굉장히 길며,
매장에 입고가 되더라도 몇 시간 만에 다 판매될 정도로 구하기 힘든 인기 가방입니다.
심지어 매장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매장 가는 스몰 사이즈(23cm) 467만 원, 미디엄 사이즈(29cm) 501만 원이다.
이 정도 사이즈의 샤넬 가죽 가방 치고는 가격대가 비교적 낮은편인데,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에 비해 예쁜 디자인으로 인해 엄청난 인기를 받고 있습니다.
- 빈티지 백 (2.55)
북미에서는 리이슈(reissue)라 불립니다.
2005년 칼 라거펠드가 2.55의 탄생 50주년을 기념하여 2.55의 원래 모양대로 만들어 출시한 이래로 꾸준하게 팔리고 있습니다. 위 클래식 백에서 설명한 마드무아젤 락이 바로 이백에 있는 락입니다.
클래식 플랩과의 차이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사이즈는 224부터 225, 226, 227이 있는데 숫자가 클수록 사이즈가 크며, 로고가 바깥에 전혀 없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샤넬이라고 생각 들지 않는 제품입니다. 명품인 티를 내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로고가 아예 바깥에 보이지 않거나 작게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넣는 것이 추세이기 때문에 인기가 더 올라간 듯싶습니다.
- 가브리엘 백
2017년 출시되었으며, 칼 라거펠트가 디자인 한 가방입니다.
- CHANEL 19 백
이름에서 알 수 있듯 2019년 신규 론칭된 가방입니다. 보이 백, 트렌디 CC 백, 코코 핸들 백처럼 시즌 백으로 출시된 후 반응이 좋아서 스테디 라인으로 편입된 가방이 아니라 처음부터 스테디 라인으로 출시된 백입니다.
신발
- 발레리나 플랫 슈즈
샤넬의 신발 중 가장 유명한 제품입니다.
지갑
- WOC
wallet on chain의 약자로 체인 지갑이라고 보면 되는 제품입니다.
분류는 지갑으로 분류되지만 형태를 보면 지갑보다는 미니 사이즈의 크로스백, 숄더백으로 사용하게끔 나온 제품입니다. 안에는 카드 슬롯이 있고 샤넬의 WOC는 모두 사이즈가 같은데, 가로 19cm, 세로 12cm, 폭 3.5cm로 지갑 치고는 크고, 좀 얇은 미니백 사이즈입니다.
클래식, 2.55, 보이, 트렌디 CC, 가브리엘, 19 등 클래식 라인 백들도 WOC 제품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격은 2020년 기준 클래식 WOC 328만 7000원, 2.55 WOC 360만 8000원, 보이 WOC 325만 원, 트렌디 CC WOC 401만 4000원, 가브리엘 WOC 337만 5000원, 19 WOC 390만 7000원입니다.
이외에도 시즌 백처럼 시즌 상품으로 특정 시즌에만 출시되는 WOC도 있습니다.
가격이 가방 대비 합리적이고 실용성도 꽤 좋다 보니 WOC도 상당한 인기를 받고 있습니다.
- 카드 지갑
샤넬의 똑딱이 버클 타입의 카드 지갑도 인기가 많은 품목 중 하나입니다. 대표적으로 보이 카드 지갑과 클래식 카드 지갑이 인기 상품입니다.
가격은 2020년 기준 클래식 카드 지갑이 59만 7000원, 보이 카드 지갑 71만 1000원입니다.
클래식 카드 지갑은 세로로 조금 더 길고 폭이 좀 더 넓은 카드를 더 많이 수납할 수 있는 제품도 있는데 해당 제품의 가격대는 69만 원대입니다.
샤넬 No.5
1921년대에 발매한 샤넬의 향수인 No.5는 최초의 인공향 향수로서 일대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전설적인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의 작품으로, 일랑일랑과 재스민, 장미 등, 온갖 고품질의 향수 재료를 집어넣어 만들었으나 그 향기가 너무 강해 조화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때 에르네스트 보가 발명한 인공향 알데하이드는 말 그대로 화학약품 냄새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발상이었고, 꽃향과 조화된 이 향기는 의외로 굉장히 매혹적이었으며,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향수가 대박을 친 덕인지 현재는 No.5를 중심으로 해서 아예 여러 다양한 종류의 샤넬 브랜드 향수들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코코 샤넬은 이 향수가 완성되자 레스토랑에서 마음에 드는 차림의 여성이 지나갈 때마다 이 향수를 뿌려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릴린 먼로가 인터뷰에서 "침대에서 뭘 입고 주무세요?"라는 질문에 “샤넬 No.5를 입는다”라고 말한 일화가 유명합니다.
아직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근본 아이템이자 말 그대로 향수의 상징입니다.
이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NO.5가 마릴린 먼로때문에 유명세를 탄 것으로 착각을 하는데, 마릴린 먼로가 NO.5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부터 NO.5는 유명하고 잘 팔렸었습니다. 잘 팔렸기에 마릴린 먼로 같은 스타도 사용했던 것이죠.
향은 많은 사람들이 고혹적이고 중후하며 무겁고 우아한 느낌의 향수라고 합니다. (물론 개인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샤넬 리틀 블랙 드레스
디자이너 코코 샤넬의 역작인 제품입니다. 이름 그대로 활동하기 편한 검은색 미니 드레스입니다.
이렇게 평범한 옷이 아직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옷이 처음 나왔을 당시만 해도 검은색은 장례식에서나 입는 불길한 색이었지만,
샤넬은 검은색이야말로 변치 않는 가치를 상징하고 고전 그 자체라며 자신의 옷에 과감하게 사용했고,
그 후에 검은색 옷을 입는 게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을 만큼 대중적인 패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926년 처음 선을 보였을 당시 패션지 보그는 리틀 블랙 드레스를 포드 모델 T에 비유하여 '샤넬의 포드'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현대 여성들의 유니폼이나 다름없는 위치의 옷이었다는 것입니다.
샤넬 슈트 (트위드 재킷)
1920년대에 처음 만들어졌고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패션계를 떠나 있었던 코코 샤넬이 1954년 업계에 복귀했을 때 다시금 리뉴얼해 내놓으면서 유명해진 제품입니다.
실용성과 우아함을 겸비한 트위드 재킷으로, 재질과 색만 바꿔서 아직까지도 출시하고 있는 제품입니다.
역시나 코코 샤넬이 디자인, 제작했으며, 이 트위드 재킷을 흉내 낸 제품도 수도 없이 많을 정도입니다.
이미 하나의 스타일이 되었고, 정작 샤넬이 이 디자인을 들고 패션계에 다시 컴백했을 때 본국인 프랑스에서는 진부하고 고루하다며 온갖 혹평을 받았으나 물 건너에서는 오히려 패션의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샤넬이 여전히 건재함을 알린 작품이 되었습니다. 디자인 자체가 실용적이며 고전적인 우아함을 갖춰서 현재도 엄청난 고가에 팔리고 있습니다.
화장품
레드 립스틱은 1924년에 샤넬이 처음으로 자신만의 개성과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제품입니다.
가브리엘 샤넬은 립스틱을 바르지 않고는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 립스틱을 바르고 색상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 그 위에 파우더를 덧발랐다고 합니다. 가브리엘 샤넬은 그중에서도 주홍빛을 띤 레드를 특히 좋아했는데, 자신의 기호에 맞춘 레드 색상을 발표하고 이를 ‘샤넬 레드(Chanel Red)’라고 불렀습니다.
상대적으로 뒤늦게 관여한 화장품 사업이지만, 엄청난 투자와 노력을 쏟아부은 끝에 샤넬의 화장품 또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샤넬 화장품에서 많은 색상이 인기가 있지만 빨간색 립스틱이 특히 인기가 있습니다. 립스틱 외에는 메이크업 베이스인 '르 블랑' 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샤넬의 제품에는 대부분 특유의 복숭아 향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명 "복숭아 향 메베"라고 불립니다.
홀리데이 컬렉션으로 출시되는 리미티드 하이라이터 등도 상당히 인기가 많습니다.
발색이 중요한 색조 화장품들은 이름값을 한다는 평이 많지만, 기초 쪽은 평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백화점 화장품들이 다 그렇지만 전성분만 놓고 보면 방부제와 실리콘 대량 투하, 향료로 사용감과 냄새만 그럴듯하게 만들었을 뿐, 정작 유효성분은 얼마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가격은 너무나도 비싼 편이기도 하죠.
이 때문에 화장품의 전성분을 확인하고 사자는 붐이 일자 '차라리 디올이 낫다'와함께 평이 뚝 떨어진 편입니다.
시계
샤넬은 시계 사업을 1999년부터 시작해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엄청난 금전적인 투자와 노력으로 시계 업계에서 인정받은 케이스입니다. 허나, 한편으로는 시계 마니아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리기도 합니다. 시계 뮤브먼트의 경우 2014년을 기점으로 기존에 사용하던 ETA사의 무브먼트에서 자사 무브먼트로 바뀌는 추세입니다.
- J12
J12는 자크 엘루가 7년의 준비 끝에 디자인한 시계이며, 12미터급 J클래스 요트경기에서 이름을 따온 제품입니다.
샤넬이 여성 패션으로 유명하지만, 처음부터 디자이너가 남자 시계로 구상하고 디자인했고, 덕분에 지금은 대표적인 유니섹스 시계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또한 시계 중에서는 라도 같은 세라믹 같은 신소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시계 브랜드처럼 샤넬도 세라믹 소재를 사용해 시계 업계에서 세라믹 소재를 대중화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기도 했습니다.
세라믹 소재를 활용하여 시계 자체의 무게도 줄이고 특유의 외관은 색다른 느낌을 주는 데다, 세라믹의 높은 경도 또한 가지고 있기에 시계 자체 강도도 강한 편입니다.
단일 디자인을 기반으로 무브먼트와 외관 색 차이, 혹은 보석 장식 등으로 상품 라인을 늘리고 있습니다.
- 프리미에르
- 라 홍드
코스튬 주얼리
가브리엘 샤넬은 어린 시절에 보았던 교회의 장식에서 심플한 그녀의 패션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코스튬 주얼리’의 화려함을 발견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상황이 여의치 못한 점을 감안한 샤넬은 코스튬 주얼리 라인을 출시하게 됩니다.
당시 샤넬은 러시아 정원, 왕의 왕관과 십자가의 화려한 모습에 영향을 받아 코스튬 주얼리로 재현했고,
1924년에는 영국의 부호였던 웨스트민스터 공작에게서 받은 희귀하고 귀한 보석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코스튬 주얼리로 재현했습니다.
가브리엘 샤넬이 사망한 후, 이 보석들은 천천히 잊혔지만 1983년에 칼 라거펠트는 가브리엘 샤넬이 즐겨 사용했던 소재들을 재해석해 팔찌와 목걸이, 귀걸이 등 다양한 코스튬 주얼리를 다시 출시했습니다.
샤넬 논란
2014년에 프랑스의 공영방송인France 3에서 방영한 TV 다큐멘터리《의혹의 그림자》에서 가브리엘 샤넬이 나치의 스파이로 활동했다는 문서가 발견됐다고 방송됐습니다. 요원 번호는 F-7124, 암호명은 웨스트민스터.
그녀는 1940년에 독일과 프랑스가 휴전을 한 이후 나치의 비밀경찰과 가까우면서가 되었고, 1940년에는 독일이 영국에 휴전을 제안할 때 비공식 사절로 윈스턴 처칠과 만났습니다.
가브리엘 샤넬은 전쟁 기간 동안 파리의 호텔 리츠에 머물렀는데 이곳은 나치 장군들과 요원들의 숙소와 가까웠습니다.
그중에는 헤르만 괴링과 괴벨스 박사도 있었습니다. 1941년 여름에 가브리엘은 독일 방첩국에 의해 첩보원으로 발탁되었는데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서 나치의 요원으로 쓸만할 인물을 탐색하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로서 현대 패션계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지만, 나치 스파이로서의 행적이 공식적으로 사실로 드러나면서, 코코 샤넬은 프랑스인들에게 수치로 남았고 샤넬 브랜드 불매 운동도 일어났습니다.
여러 정황상 코코 샤넬이 나치 부역자였다는 증거와 일화들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브랜드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코코 샤넬에 대한 인간적인 평가는 아주 좋지 못합니다.
거기에 칼 라거펠트 역시 미투 운동이 지긋지긋하다는 발언을 해 불매운동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불매운동은 언제 있었는지도 모르게 사그라들었고 칼 라거펠트는 계속해서 샤넬의 성공을 이어갔습니다.
샤넬 TMI
- 샤넬의 장식끈은 오직 프랑스의 장인 한 분만이 만드는데 시골에서 생활하고 제작하며, 만드는 방법은 수석 디자이너였던 칼 라거펠트도 모릅니다. 샤넬 측에서 장식끈 만드는 방법을 배워오라고 수차례 사람을 보냈지만, 모두 중도에 포기했습니다. 자신이 죽으면 후대 사람들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서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 CHANEL이라 쓰지만 프랑스어이므로 채널이 아닌 샤넬로 읽는데 일단 철자 자체도 다른데 채널은 CHANNEL이고 샤넬은 CHANEL입니다. 채널이라고 읽는 사람들이 좀 있습니다. 싸이월드의 귀여니라는 사람이 샤넬 매장 앞에서 "LA 비버리힐즈 채널 매장"이라는 허세를 부려 한 때 짤방 이 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 심슨가족의 시즌 7 에피소드 14 'Scenes From The Class Struggle In Springfield' 에선 마지가 우연히 교외 아울렛에 갔다가 90달러짜리 핑크색 샤넬 트위드 정장을 건지는데, 이후 샤넬 정장을 입고 상류층 여인들과 엮이면서 허영심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입니다.
- 한국에선 샤넬 제품이 아울렛에 없지만, 미국이나 유럽 일부에는 샤넬 제품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 샤넬 자체에서 아울렛에 부티크를 내고 파는건 아니고 이거저거 다 구매하는 만물상류 아울렛에 있는 듯 합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유명한 우드버리 아울렛에 실제로 샤넬 아울렛이 있기도 했었으나 지금은 문을 닫았습니다.
- 2018년에 창업 108년 만에 처음으로 전년도(2017년) 매출을 공개하였는데 무려 96억 2천만 달러로 루이비통에 이은 2위를 기록하였습니다.
루이비통은 108억 달러, 구찌는 72억 달러, 에르메스는 64억 달러, 프라다는 36억 달러 수준.
유럽에서의 매출은 39억 달러 수준이고 아시아 시장은 37억 5천만 달러로 여전히 브랜드가 강세함을 과시하였습니다.
갑작스러운 매출 공개를 두고 여러 해석들이 나왔는데, 구찌와 펜디를 비롯하여 여러 명품 브랜드들이 트렌디함을 내세워 각광받자 상대적으로 샤넬의 화제력이 약해지면서 위기설이 대두되었는데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공개였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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